지난해 7월, 아내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하며 세고비아에 이어 톨레도를 찾았습니다. 마드리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톨레도는 한때 스페인의 수도였던 도시로, 중세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세고비아의 수려한 수로교와 고성을 감상한 후, 우리는 투어버스를 타고 가이드와 함께 톨레도로 향했습니다.
톨레도는 도시에 다가서는 순간부터 특별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도시 전체가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고딕 양식, 무데하르(이슬람과 기독교 건축양식의 융합) 스타일의 건물로 가득 차 있었고, 이를 감싸듯 Tagus(타호) 강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흘렀습니다. 언덕 위에 올려진 도시와 이를 감싸는 강의 조화는 마치 한 폭의 중세 유화처럼 느껴졌습니다.
톨레도는 '세 개의 문화가 만나는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가 오랫동안 함께 공존했던 곳이기 때문인데,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이 건축과 거리의 분위기 곳곳에 배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톨레도의 역사적 배경과 수도 이전 이야기
톨레도는 한때 스페인, 더 정확히 말하면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입니다. 이곳은 로마 제국 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성장했고, 서고트 왕국 시대(6세기경)에는 이미 중요한 정치·종교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중세 이슬람 시대에도 번성했던 톨레도는 1085년 알폰소 6세에 의해 기독교 세력에 의해 재정복(Reconquista)되면서, 스페인 내 기독교 세계의 대표적 심장부가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톨레도의 수도 지위는 점차 약해집니다. 1561년, 스페인 왕 펠리페 2세(Philip II)는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공식 이전합니다.
1) 왜 수도가 마드리드로 옮겨졌을까?
- 지리적 중립성
- 마드리드는 당시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였지만, 스페인 전역으로의 접근성이 뛰어났습니다. 북쪽 카스티야와 남쪽 안달루시아, 동쪽 발렌시아 지방을 연결하는 중앙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 마드리드는 당시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였지만, 스페인 전역으로의 접근성이 뛰어났습니다. 북쪽 카스티야와 남쪽 안달루시아, 동쪽 발렌시아 지방을 연결하는 중앙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정치적 필요
- 펠리페 2세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를 만들기 원했는데,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교회의 영향력이 큰 톨레도보다는, 새롭게 중앙정부 중심의 도시를 필요로 했습니다.
- 교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 톨레도는 스페인 가톨릭 교회의 총본산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왕권 강화에 있어 부담이 되었습니다.
- 물자 조달과 거주 환경
- 마드리드는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고, 깨끗한 물(마드리드 주변 산맥에서 공급)이 풍부해 왕실 생활에 적합했습니다.
2) 수도 이전이 톨레도에 미친 영향
- 경제적 쇠퇴
- 수도 기능이 이전되면서, 행정기관과 왕실이 떠나고, 상업 활동도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특히 귀족층과 부유한 상인들이 마드리드로 이주하면서 톨레도의 경제는 급격히 침체하게 됩니다.
- 문화 유산의 보존
- 오히려 산업화와 현대화의 물결에서 한 발 비껴서게 된 덕분에, 톨레도는 중세적 원형을 고스란히 보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좁은 골목길, 석조 건물, 성곽, 대성당 등이 거의 변형 없이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 도시 전체가 박물관
- 수도 기능은 잃었지만, 스페인 왕실과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톨레도를 '영적 중심지'로 존중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늘날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살아있는 박물관" 같은 장소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톨레도 대성당, 신앙과 예술의 정수
톨레도 여행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바로 Catedral Primada de Toledo(톨레도 대성당)입니다. 우리는 도시를 둘러본 후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 긴 시간 동안 감탄하며 관람했습니다.
톨레도 대성당은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정신적 중심지로, 1226년에 착공되어 약 250년 동안 건축이 이어진 대작입니다. 스페인 고딕 양식의 대표작으로 평가받으며, 곳곳에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도 섞여 있어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당 외부는 섬세한 조각으로 가득한 세 개의 대문(문 중에서도 ‘용서의 문’ Puerta del Perdón이 유명함)이 인상적이고, 90미터 높이의 종탑은 톨레도 어디서나 눈에 띄는 랜드마크가 됩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중앙 회랑(Nave)과 하늘을 향해 치솟는 아치형 천장, 빛이 쏟아지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시선을 압도합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주제대(El Transparente): 스페인 바로크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이 조각 작품은 천장에 구멍을 뚫어 자연광이 주제대를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빛과 조각, 회화가 하나가 되어 극적인 효과를 연출합니다. 엘 트란스파렌테는 단순히 '제단화'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한, 건축, 조각, 회화(프레스코)가 결합된 거대한 바로크 양식의 예술 복합체입니다. 18세기 초 (정확히는 1721년부터 1732년까지)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나르시소 토메(Narciso Tomé)와 그의 아들들이 제작했습니다. 스페인어로 'Transparente'는 '투명한' 또는 '빛을 통과시키는'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작품의 가장 혁신적인 특징, 즉 빛의 활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성가대석(Coro): 목재로 정교하게 조각된 성가대석은 중세 장인들의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며, 기독교 역사의 장면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 보물실(Tesoro): 대성당의 보물실에는 엄청난 크기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주교의 십자가와 왕관, 성기구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엘 그레코(El Greco) 작품: 대성당 내부의 여러 예배당에서는 스페인 르네상스 화가 엘 그레코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El Expolio (그리스도의 옷을 벗김) 작품은 신약성경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수난 중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인, 유다가 예수님께 입을 맞춰 신호를 보내고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 작품: 대성당 내부의 사제관(Sacristía)에 프란시스코 데 고야(Francisco de Goya)의 ‘그리스도의 체포 (El Prendimiento de Cristo)’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신약성경에 묘사된 그리스도의 수난 중 가장 극적인 순간 중 하나인, 유다가 예수님께 입을 맞춰 신호를 보내고 로마 병사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게세마네 동산에서의 배신과 체포를 다룬 이 그림은 고야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강렬한 명암 대비(키아로스쿠로)와 극적인 구도, 그리고 인물들의 생생한 표정과 심리적 묘사가 두드러지는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대성당은 단순히 신앙의 공간을 넘어, 중세 스페인의 권력, 문화, 예술이 집약된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두세 시간은 넉넉히 잡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골목골목을 걸으며 만난 톨레도의 풍경들
톨레도는 큰 도시가 아니기에 걸어서 천천히 둘러보기에 아주 좋습니다. 돌로 포장된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수백 년 전 중세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듭니다.
- 칼럼브라 거리(Calle del Comercio)를 지나며 만나는 상점들은 고풍스러운 간판과 함께 소박한 기념품들을 팔고 있었고, 특히 톨레도 명물인 ‘톨레도 검(Toledo Sword)’ 상점들이 인상적입니다.
- 유대인 지구(Juderia)에서는 하얀 벽과 파란 문이 조화를 이루고, 작은 회당과 박물관이 숨어 있어 걷는 재미가 있습니다.
- 산 마르틴 다리(Puente de San Martín)를 건너며 타호 강의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추천할 만합니다.
- 플라사 소코도베르(Plaza de Zocodover) 광장에서는 여행객들과 현지인들이 어우러진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수녀들의 카페 (El Café de las Monjas): 엘 카페 데 라스 몬하스(El Café de las Monjas)는 스페인 톨레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장소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이름 그대로 '수녀들의 카페' 또는 '수녀원 카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톨레도 지역 여러 수녀원에서 수녀님들이 직접 만든 전통 빵과 과자를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해질 무렵, 언덕 위 전망대(Mirador del Valle)에서 내려다본 톨레도 전경은 황금빛 햇살에 물들어 더욱 환상적이었습니다.
언덕 위에서 마주한 시간의 흐름, Mirador del Valle
톨레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 중 하나는 Mirador del Valle 전망대에서 톨레도 전경을 내려다본 장면이었습니다.Mirador del Valle는 도시 맞은편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전망 포인트로, 타호 (Tagus) 강이 마치 거대한 고리처럼 도시를 휘감는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톨레도의 중세풍 건물들, 톨레도 대성당의 고딕 첨탑, 알카사르(Alcázar) 요새까지 모두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해질 무렵, 붉게 물드는 햇살 아래 톨레도는 더욱 극적인 풍경을 자아냅니다. 특히 해가 지기 시작하는 골든 아워 시간대에 방문하면, 도시 전체가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며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기에도, 단순히 멍하니 바라보기에도 최고의 장소입니다.
Mirador del Valle에서는 다음과 같은 명소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 중앙에 우뚝 솟은 톨레도 대성당
- 오른편 언덕 위로 웅장하게 자리 잡은 알카사르 요새
- 타호 강을 가로지르는 산 마르틴 다리(Puente de San Martín)와 알칸타라 다리(Puente de Alcántara)
특히, 엘 그레코가 그린 유명한 작품 ‘톨레도의 전경(View of Toledo)’도 이 Mirador del Valle에서 본 풍경을 토대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엘 그레코 특유의 드라마틱한 색감과 구성이 현실과 닮아 있으면서도 약간은 초현실적인 톤을 입힌 점이 특징입니다. 실제로 Mirador del Valle에 서면, 엘 그레코가 왜 톨레도에 이토록 매료되었는지 몸소 체감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아내와 함께했던 톨레도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살아있는 역사 속을 거니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타호(Tagus) 강이 감싸 안은 아름다운 풍경, 세 가지 문화가 공존했던 흔적,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도시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까지. 톨레도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깊은 역사와 아름다운 풍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곳입니다.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마드리드 근교의 아름다운 도시 톨레도를 꼭 방문해보세요. 그곳에서 여러분만의 특별한 '시간 여행'을 떠나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라이프 스타일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 여행] 꿈결같던 파리에서의 첫날: 설렘, 맛, 그리고 예술의 향연 속으로! (2) | 2025.05.19 |
---|---|
[미국 여행] 인생샷을 향한 세 가족의 데스밸리 모험! (+ 데스밸리 여행 정보) (4) | 2025.05.12 |
[스페인 여행 - 세고비아] 시간이 멈춘 듯, 스페인 세고비아: 백설공주 성 알카사르와 로마 수도교를 만나다 (0) | 2025.04.29 |
[스페인 마드리드 여행] 태양 아래 빛나던 순간들, 우리 부부의 마드리드 이야기 (3) | 2025.04.28 |
[스페인 그라나다 여행] 붉은 언덕 위에 펼쳐진 황홀경, 알람브라 궁전과의 잊지 못할 만남! (4) | 2025.04.25 |